정치적 타격을 우려한 여권 관계자들은 서둘러 불심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공무원은 종교적으로 편향되면 안 된다'라는 규범적인 선언 외에는 불심을 달랠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마땅한 대책이 없기는 언론·학계 등 여론 주도층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부의 성의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불교계도 대응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사회 통합에 이바지해야 할 종교마저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는 한 방송사 논설위원의 논평은 이번 사태를 보는 일반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종교 때문에 사회 갈등의 골이 깊이지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확신이다.
종교 갈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상식으로 통용된다. "다음 중 '바람직하지 않은' 종교의 모습은?"이라고 문제가 나온다면 누구나 쉽게 골라낼 수 있는 그런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종교편향 논란을 대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무언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찾아내는 데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이 대통령과 관료들의 과거 친개신교 행적을 재론하거나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 행태 등을 문제 삼는 것은 결국 종교 갈등을 유발한 원인과 책임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종교 갈등은 우려스러운, 바람직하지 않은 종교의 부정적인 모습이기만 할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갈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최근 이슈와 관련해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규범'은 한 가지다. 바로 종교는 정치 영역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이다.
종교가 종교 영역에만 머물러 있어야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일련의 사건처럼 정치 지도자가 종교적 신념을 드러내거나, 반대로 종교 지도자가 정치적 야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것은 다른 종교의 반발을 낳는 심각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현재 한국 사회는 한 특정 종교가 지배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지 못하는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에 정교분리 원칙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현실론을 강조하기도 한다.
종교 갈등은 부정적인 것이고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교분리 원칙은 강조돼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일부 관료와 개신교 인사는 이것을 어기고 있다는 비판. 바로 이것이 최근 종교편향 논란을 바라보는 여론 주도층의 일반적인 인식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일반의 인식과는 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일단 정부는 선언적이나마 공무원의 종교적 편향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겠지만, 과연 어떤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더는 정치적 세력화 또는 정치적 실력 행사 의지를 숨기지 않는 주요 종교 집단의 움직임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지에 대해 어떠한 논의나 합의도 이뤄놓은 바가 없다.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정치적 집단의 출현. 60년이 지난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번갈아 열린 대규모 법회와 예배는 이미 자신들의 종교적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대규모 실력행사에 나서겠다는 한국 주류 종교계의 분명한 의지를 드러냈다. 영향력의 차이는 있을지는 몰라도 추구하는 목적은 다를 바 없는 그런 모습이다.
이런 종교 집단의 움직임을 일정 부분 견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권위적 국가권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시민 사회는 이런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다. '종교가 사회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라는 메아리 없는 외침만 맥없이 내뱉을 뿐이다.
'종교가 사회 통합에 이바지해야 한다'라는 생각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종교 집단에 요구했던 특별한 가치에 불과하다. 그런 요구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종교는 항상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봉사하는 것에 더 충실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종교 갈등을 일정 부분 제어해줄 거라 기대되는 정교분리 원칙도 누구나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 아니라 근대 국가 출범 과정에서 당시 정치 세력의 필요에 의해 특정 국가로부터 도입한 선험적 규정에 불과할 뿐이다.
뿔 난 불교계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이제 갈등의 양상을 드러내는 데에는 굉장히 익숙해졌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종단 권력 장악을 위해 몽둥이 들고 싸우는 스님은 봤지만, 촛불 들고 반정부시위하는 스님의 모습은 예전에 없었지 않는가.
종교 갈등은 그 자체도 부정적인 것도 낯선 것도 아니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종교 간 갈등과 경쟁은 어느 시대, 어느 자리에서나 치열하게 이뤄져 왔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다.
관건은 이런 갈등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풀어나가는 데 있다. 종교가 왜 이래 할 일이 아니다. 종교는 원래 이렇고 문제는 우리다.
* 이 글은 2008년 9월 13일 중앙대학교 중대신문사의 요청을 받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회원 자격으로 기고한 글 원문입니다. 최종 인쇄본은 수정될 수 있습니다.
'혼잣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진홍의 경험과 기억, 함께 듣기 (2) | 2008/09/26 |
|---|---|
| 믹시.. 흥미롭네요 (0) | 2008/09/18 |
| 뿔 난 불교계, MB·개신교가 문제? (1) | 2008/09/13 |
| 선교=상행위=구걸=소란행위? (0) | 2008/08/03 |
| 다음 주부터 읽을 책 목록 (1) | 2008/07/20 |
| 어색한 동거, 콱 꽂히는 사진 (2) | 2008/03/03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잘 읽었습니다.(저는 종교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탱굴님
마음 넉넉한 한가위 맞으셔요.^^